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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한국사] 현대사 [현대사]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로 남산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2년 임기의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하였다. 뒤이어 7월 17일 이 제헌 국회가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 책임제의 혼합형 정치 형태, 3권 분립, 국회의 간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등 내용이 담긴 헌법을 제정하여 공포하였고, 이날이 지금의 제헌절이다. 이에 따라 8월 15일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하는 정부가 수립되었다. 총선 이전의 4월 3일날 제주도에서 미군 철수와 남한 단독 선거를 반대하는 좌익 세력의 봉기가 있었으나 탄압되었고, 총선 이후 10월 19일 여수순천에서 제주도 4.3사건 때 출동을 거부했던 군대 세력이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승만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토벌하였다. 진압 과정에서 여수와 순천의 .. 2020. 4. 17.
[공무원 한국사] 무장 독립 투쟁 [무장 독립 투쟁] 국내에서도 1919년 천마산대, 1920년 보합단, 1920년 구월산대 등이 만주의 독립군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무장 항일 투쟁을 이어 나갔다. 국외에서는 3.1 운동을 계기로 조직적인 무장 독립 전쟁의 필요성을 주장되었다. 북간도(북만주)에 대한 독립군(홍범도, 1919), 북로 군정서군(김좌진, 대한 정의단이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권고를 받고 북로 군정서로 개칭하였다.), 국민회군(안무, 1919), 군무도독부군(최진동, 1919)가 조직되었다. 서간도(남만주)에는 서로 군정서군(이상룡, 1919), 대한 독립단(박장호, 1919), 광복군 사령부(조병준, 1920), 광복군 총영 등이 조직되었다. 1920년 6월,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북간도 독립군 부대.. 2020. 4. 15.
[공무원 한국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열단 [대한민국 임시 정부] 3.1 운동 직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각지에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연해주에는 대한 국민 의회(대통령 손병희, 국무총리 이승만), 상하이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신한 청년당 중심, 국무총리 이승만), 국내에는 한성 정부(집정관 총재 이승만, 국무총리 총재 이동휘)가 있었다. 4월 신한 청년당을 중심으로 임시 의정원이 구성되었으며, 11일날 ‘대한민국임시헌장’을 반포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해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 임시의정원을 주체로 하여, 1919년 9월 11일, 본부를 상하이로 하고, 임시 의정원(입법부), 국무원(행정부), 법원(사법부)의 3권 분립 체제를 둔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2020. 4. 13.
[공무원 한국사] 1910년대 국내외 독립운동, 3.1 운동 [독립운동] 1912년, 고종의 밀지를 받은 임병찬은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독립 의군부는 의병과 유생으로 이루어졌으며 복벽주의와 왕정 부활을 추구하였다. 의병 전쟁을 목표로 ‘국권 반환 요구서’ 보내려고 하다 발각되어 해체되었다.1915년, 사령 박상진, 부사령 김좌진을 중심으로 군대식 조직인 대한 광복회가 결성되었다. 의병 출신과 신지식인들도 참여한 이 조직은 근대 공화주의를 표방하였으며, 만주에 무관 학교를 짓기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한,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광복회 실천 강령’에는 ‘부호의 의연금과 일본의 불법 징수 세금을 압수하여 무장을 준비한다, 만주에 군관 학교를 세워 독립 전사를 양성한다, 일본인 고관과 한인 반역자를 처단하는 행형부를 둔다.’ 등의 내용이 있다. 서간도(남만주).. 2020.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