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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Korean history

[공무원 한국사]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을미개혁

by ststeady 2020. 4. 7.

<동학농민운동(1894)>

-1892년 삼례집회에서는 교조 신원 운동을 하며 종교 운동적 성격을 보였지만, 1893년 보은집회부터는 반봉건, 반외세를 주장하여 정치사회 운동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가 심해지자 전봉준이 농민들 사이에 사발통문을 돌리고 18941월 고부 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수습을 위해 신임 군수로 보낸 박원명의 온건책으로 농민들은 자진 해산하였으나, 조사를 위해 파견된 안핵사 이용태의 민란 참가자 색출과 가혹한 처벌로 농민들의 불만이 재개되었다.

 

18943월에서 5월동안 반봉건 투쟁으로 남접 세력만 참가한 제1차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 남접 세력은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위한 무장 봉기 창의문을 발표하고, 백산 집회에서 격문과 4대 강령을 선언하였다.

황토현 전투와, 황룡촌 전투에서 승리하며, 1894427일 전주성까지 점령하였다.

정부가 청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자 텐진 조약을 구실로 일본도 군사를 파견하였다.

189457, 동학 농민군은 외국 군대의 철수와 폐정 개혁안, 집강소 설치 등을 조건으로 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하였다. 정부는 1894611일 교정청을 설치하여 자주 개혁을 추진하며 일본군의 철수를 요청하였다.

 

-농민군 4대 강령:

사람을 죽이지 말자,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자,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깨끗이 하자, 군대를 이끌고 서울로 들어가 권세가를 없애자.

 

-폐정 개혁안 12개조: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백정의 평량립을 없애고, 청상과부의 개가를 허용하는 등 봉건적 신분제의 타파를 주장하였다. 무명 잡세의 폐지와 관리의 채용에 있어 지벌 타파를 주장하였다. 왜와 내통하는 자는 엄징하고, 공사채를 무효로 하고, 토지를 균등히 나누어 경작케 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일본군이 기습적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아산만의 청군 군함을 공격하면서 청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18949월 반외세 투쟁으로 번져 남북접이 모두 참가한 제2차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전라 감사 김학진의 협조로 삼례에서 재봉기한 후, 논산에서 전봉준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연합하였다.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 민보군(양반세력)에게 패배하였다.

 

 

 

<갑오개혁>

-1894.06.25.~1894.11. 1차 갑오개혁: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개국연호를 사용하였으며, 왕실 사무를 궁내부로 정부 사무를 의정부로 분리하였고, 의정부 산하의 6조를 8아문으로 개편하였다.

과거제를 폐지하고, 공노비사노비 제도를 폐지하였다.

조혼, 과부의 재가 금지, 고문, 연좌제 등의 봉건적 악습을 타파하였다. 삼사와 언론 기관을 폐지하였으며, 경찰 기관인 경무청을 설치하였다.

탁지아문에 모든 재정 사무을 관할시켰으며, 은본위 제도를 채택하고 조세 금납화를 시행하였다.

 

-1894.11.~1895.05. 2차 갑오개혁:

청일 전쟁에서 승세를 잡은 일본이 군국기무처를 폐지하고 박영효과 서광범을 선두로 친일적인 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고종은 종묘에 나가 독립 서고문을 바치고, 홍범 14를 반포하여 적극적인 개혁을 추진하려 하였다.

의정부와 8아문을 내각과 7부로 개편하고, 8도를 23(337)으로 개편하였다.

사법권을 독립시켜 근대적 재판소를 설치하고, 교육 입국 조서를 반포하여 한성 사범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외국어 학교 관제를 발표하였다.

훈련대, 신설대, 시위대를 설치하였다.

1895년 삼국 간섭(,,)으로 개혁이 중단되었다. 이후 친러적인 제3차 갑오개혁이 추진되었다.

 

-1895.08.~1896.02. 을미개혁:

일본은 1895년 을미사변을 일으키고 친일적인 을미개혁을 추진하였다.

연호로 건양을 사용하였으며, 태양력 사용을 선포하였다.

중앙군은 친위대, 지방군은 진위대로 편성하였다.

단발령을 반포하고, 소학교를 설치하였으며, 종두법(지석영)을 실시하였으며, 우체사를 설치하여 갑신정변으로 중단되었던 우편 사무를 재개하였다.

18962월 아관파천으로 개혁이 중단되어 단발령이 폐지되고, 의정부가 다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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