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기원전57)>
경주 지역 토착민 세력과 유이민 집단의 결합으로 박혁거세가 건국하였다.
<내물 마립간(356~402)>
김씨가 독점적인 왕위 형제 상속을 시작하였다.
왕호로 마립간을 사용하였다. (순서: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왕)
낙동강 동쪽 진한 지역을 장악하였다.
고구려를 통해 전진과 수교하였다.(377) 사신 위두를 전진에 파견하였다.(382)
400년, 고구려의 원조로 왜구를 격퇴하였다. 이후 고구려의 내정간섭이 시작되었다.
경주 호우총에서 광개토대왕릉비 호우명 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광개토 대왕 장례식이 끝나고 신라 사신이 받아온 것으로 추측된다.
<눌지 마립간(417~458)>
왕위 부자 상속을 시작하였다.
433년, 나제동맹을 맺었다.
457년, 묵호자에 의해 민간에 불교가 전래되었다.
<소지 마립간(479~500)>
부족적인 6촌을 행정적인 6부로 개편하였다. (cf. 고구려에선 고국천왕이 부족적인 5부를 행정적인 5부로 개편하였다.)
493년, 백제와 결혼동맹을 맺었다.
국가 공문서 송달을 위한 우역(역참)을 설치하였다.
경주에 시사(시장)을 개설하였다.
<지증왕(500~514)>
국호를 사로국에서 ‘신라’로, 왕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었다. (한화정책)
지방의 주, 군을 정비하고 주에 군주를 파견하는 등 지방제도를 정비하였다.
502년, 순장을 금지하였다.
우경을 제도화하고, 수리 사업을 전개하여 농업생산력을 증대시켰다.
503년, 영일냉수리비
505년, 주와 군 제도를 정비하였다.
508년, 시장 감독 기관인 동시전을 설치하고, 509년 동시를 설치하였다.
512년, 실직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법흥왕(514~540)>
병부를 설치하고, 17관등제와 골품제를 실시하였다.
522년, 대가야와 결혼동맹을 맺었다.
524년, 울진봉평신라비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성법흥왕, 법흥성왕 등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였다.)
531년, 귀족 회의인 화백 회의의 대표인 상대등을 설치하였다.
532년, 금관가야를 복속하였다.
536년, 신라 최초의 연호로 ‘건원’을 사용함으로써 자주국의 위상을 세웠다.
<진흥왕(540~576)>
한강유역을 장악하였다.
스스로를 전륜성왕이라 자처하고, 개국, 대창, 홍제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법흥왕 때부터 시작한 흥륜사를 완공시키고, 황룡사를 창건하였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선덕여왕 때이다.)
고구려 승려 혜량을 국통(승통)으로 삼고 그 아래 주통, 군통을 두어 불교교단을 정비하였다.
화랑도(국선도, 풍월도, 원화도, 풍류도)를 국가 조직에 편입시켰다.
관리의 감찰을 맡는 경(사정부의 전신)과 국가 재정을 관리하는 품주(진덕 여왕 때 집사부가 되었다.)를 두었다.
545년,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551년, 친정 선언과 함께 개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551년, 고구려의 적성을 공격하여 차지하고, 그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 야이차를 포상하기 위한 단양 적성비를 세웠다.
554년, 관산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555년, 백제가 점령하고 있던 한강 하류 지역을 마저 확보하여 신주를 설치하고, 북한산(순수)비를 세웠다.
561년, 창녕의 비화가야를 정복하고, 창녕(척경)비를 세웠다.
562년, 이사부와 사다함을 통해 대가야를 복속하였다. (비화가야 정복과 대가야 복속으로 가야가 멸망하였다.)
568년, 고구려 영토였던 원산만까지 진출하여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를 세웠다. (함경도에 진출하였다.)
<진평왕(579~632)>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고구려 원정을 청하는 걸사표를 보내 수의 양제가 고구려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원광법사는 세속오계를 지었다.
관제를 정비하였다. (위화부, 조부, 예부, 승부, 영객부)
591년, 남한산성을 축조한 후, 남산 신성비를 건립하였다.
<선덕여왕(632~647)>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영묘사와 첨성대를 건립하였다.
분황사를 건립하고, 목탑양식이 가미된 분황사모전석탑을 세웠다.
비담과 염종의 반란이 있었다.
<진덕여왕(647~654)>
연호를 태화로 바꾸었다.
648년, 나당연합을 이루었다.
중국 의관과 중국(당)의 연호(영휘)를 따랐다.
650년, 당 고종에게 태평송을 지어 보냈다.
품주를 개편하여 국왕 직속 최고 관부로서 집사부를 설치하고, 품주의 원래 기능은 창부를 신설하여 이관하였다. 좌이방부를 설치하였다.
<무열왕(654~661)>
백제가 멸망하였다.
관리감찰 부대인 사정부를 설치하였다. (cf. 발해는 관리감찰을 위해 중정대를 두었다.)
<문무왕(661~681)>
663년, 경주에 계림도독부(당)를 설치하였다.
665년, 취리산 회맹을 맺었다.
667년 우이방부, 678년 선부를 설치하였다.
670년, 안승의 원조 요청을 받고, 안승을 금마저(고구려왕)로 삼았다.
671년, 사비성을 공격하여, 웅진도독부 대신 소부리주를 설치하였다.
673년, 지방관을 감찰하는 외사정을 파견하였다.
674년,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임명하였다.
675년, 당과의 천성 전투, 매소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676년,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하여 삼국을 통일하였다. (대동강~원산만)
원효와 의상, 원측이 활동하였다.
선덕여왕 때, 중국에서 밀교를 배운 명랑이 이를 처음으로 전하였다. 문무왕 때,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침략하게 되자 왕은 명랑에게 적을 물리칠 방법을 물었는데, 이때 사천왕사를 지어 도량을 열 것을 제의하였다. 679년, 사천왕사를 짓고 문두루비법을 쓰자,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물에 침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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