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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Korean history

[공무원 한국사] 고구려 역대 왕 중요 업적

by ststeady 2020. 3. 28.

광대토대왕공적기념호우 (호우명그릇)

[고구려]

<건국(기원전 37)>

부여 계통 유이민 세력(주몽)과 압록강 유역의 토착민 세력이 결합하여 환인 졸본성(오녀산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동명성왕(고주몽, 추모왕, 기원전 37~기원전 19)>

졸본에서 고구려를 건국하고, 비류국(송양), 행인국, 북옥저 등을 정복하였다.

 

<태조왕(53~146)>

계루부 고씨가 왕위의 형제상속을 시작하였다.

옥저를 정복하였다. (56)

현도군을 공격하여 요동을 공략함으로써 만주 지방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고국천왕(179~197)>

왕위의 부자 상속을 시작하였다.

을파소를 국상으로 삼고, 그의 건의로 빈민구제정책인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194)

태조왕 때 시행한 부족적 5부 체제를, 행정적 5부 체제로 변경하였다.

 

<동천왕(227~248)>

위를 견제하기 위해 오와 통교하였다.

242, 중국과 낙랑의 연결통로 차단을 위하여 서안평을 공격하였다.

244, 위의 관구검이 반격하였다. (‘관구검기공비에는 244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246년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으로 환도산성이 함락되고 동천왕은 옥저 지방까지 패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45, 현도태수 왕기의 공격이 있었다.

 

<중천왕(248~270)>

관나부인 사건이 있었다.

 

<미천왕(300~331)>

311, 서안평을 점령하였다. (서안평은 요동으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314, 낙랑과 대방을 축출하였다. (대동강 유역을 확보하여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고국원왕(331~371)>

342, 전연의 침략이 있었다. 모용황과 요동 지방을 두고 공방전을 하다, 수도 국내성까지 함락당했다.

371, 평양성에서 백제 근초고왕과 항전 중 전사하였다.

 

<소수림왕(371~384)>

전진과 수교하였다.

372, 기록상 우리나라 최초 교육 기관인 태학을 설립하였다. (귀족 자제들에게 유교경전과 역사를 가르쳤다.)

372, 전진의 순도를 통하여 삼국 중 최초로 불교를 수용하였다.

373, 율령을 반포하고 성문법을 만들었다.

백제와는 충돌이 그치지 않았으며, 거란족의 침략을 받기도 하였다. (378)

 

<광개토왕(391~412)>

연호로 영락을 사용하고, 호칭으로 태왕을 사용하며, 자주성을 표명하였다.

비려 등 거란을 정벌하였다.

즉위 6, 수군으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에 있는 백제왕성(몽촌토성)을 공격하고, 58700촌을 취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백제 아신왕을 굴복시키고 한강 이북 땅을 차지하였다.

400, 백제, 가야, 왜 연합군의 공격에서 신라를 구원하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이로써 한반도 남부까지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며, 이후 금관가야가 위축되었다.

후연(선비족)과 비려(거란족) 일파 패려를 몰아내고 요동을 차지하였다.

숙신(여진족)과 동부여를 정벌하여 만주를 장악하였다

동예를 통합하였다.

 

<장수왕(412~491)>

414,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

415, 호우명 그릇을 제작하였다.

중국 남북조와 교류하였다.

427, 평양 천도 후 강력한 남하정책을 시작하였다. 이후, 사립교육기관인 경당을 세워, 지방 평민에게 한학(독서)와 무술(활쏘기)를 가르쳤다.

475,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 개로왕을 살해하였다. 이로써, 남양만~죽령 일대를 차지하고, 남하 정책을 기념하기 위해 충주(중원) 고구려비를 세웠다.

유연과 지두우를 분할 점령하였다.

중국 남북조와 각각 교류하는 다면적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유목 민족인 유연과도 통교하였다.

 

<문자왕(491~519)>

494, 부여를 복속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는 최대 영토를 확보하였다.

귀족 연합 정치를 실행하였다. (대대로)

 

<영양왕(590~618)>

590, 온달이 아차산성에서 신라군과 전투 도중 사망하였다. (아단성 전투, 한강 유역 공격, 590)

598, 수나라 견제를 위해 요서를 선제 공격하였다.

수 문제, 양제의 공격이 있었다.

612, 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이 활약하였다.

담징이 일본에 종이와 먹 제작법을 전파하고, 호류사 금당 벽화를 그렸다.

혜자가 일본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영류왕(618~642)>

당의 침입 막기 위해 비사성~부여성에 천리장성을 설치하였다. (631~647(보장왕))

642,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키고, 대당 강경책으로 전환하였다.

혜관이 삼론종을 개조하고 불교를 전파하였다.

 

<보장왕(642~668)>

645, 당 태종 침입을 안시성 전투에서 성주 양만춘과 군,민들의 협력으로 막아냈다.

연개소문 사후 권력쟁탈전으로 국력이 약해졌다.

연남생이 당에 투항하였지만, 평양성이 함락되었고, 668년 안동도호부()가 설치되었다.

 

보장왕은 당나라고 끌려갔다가 677년 요동 도독 조선군왕이 되었으나, 고구려 부흥운동하다가 유배되고 사망하였다.

 

+고구려 부흥 운동이 있었다.

한성에서 검모잠이, 오골성에서 고연무가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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