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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Korean history

[공무원 한국사] 백제 역대 왕 업적

by ststeady 2020. 3. 29.

양직공도

[백제]

<건국(기원전 18)>

고구려 계통의 유이민(온조 세력)과 한강 유역의 토착세력이 결합하여 하남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하였다.

 

<고이왕(234~286)>

관등제(6좌평, 16관품제)3색 관복제(,,)를 실시하였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율령을 반포하였다.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왕위의 형제 상속을 시작하였다.

왕과 귀족이 모여 정사를 보는 관청인 남당을 설치하였다.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하였다.

중국 서진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근초고왕(346~375)>

마한 전 지역을 통합하고 요서로 진출하였다.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고 황해도로 진출하였다.

산둥반도, 요서, 일본 규슈로 진출하였다.

왕위 부자 상속을 시작하였다.

박사 고흥이 역사서인 서기를 편찬하게 하였다.

동진과 수교하고, 일본에 칠지도를 하사하였다.

아직기와 왕인을 왜에 보내어 선진 문물인 한자, 유학, ‘천자문’, ‘논어를 전파하였다.

 

<침류왕(384~385)>

384, 동진의 마라난타를 통하여 불교를 수용하였다.

 

 

<아신왕(392~405)>

396,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항복하였다.

고구려와 대항하고자 왜에 태자를 외교 사절로 파견하였다.

 

<비유왕(427~455)>

433, 눌지 마립간과 나제동맹을 맺었다.

중국 남조의 송과 교류하였다.

 

<개로왕(455~475)>

북위에 고구려 공격을 위한 원병을 요청하는 국서를 보냈다.

475, 장수왕이 개로왕의 국서를 명분삼아 백제를 공격하였고, 개로왕은 위례성(한성)이 함락당하고 아차산성에서 전사하였다. (백제왕 부여경)

 

<문주왕(475~477)>

475,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였다.

 

<동성왕(479~501)>

493, 소지왕과 결혼동맹을 맺었다.

498, 탐라를 정복하였다.

중국의 남제와 수교하였다.

나성을 축조하고, 우두성 및 가림성을 축조하였다. (백가의 반란)

 

<무령왕(501~523)>

백가 등 반란을 진압하였다.

지방 22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하여 중앙 집권을 강화하였다.

고구려와 말갈의 침입을 크게 물리쳤다.

5경 박사인 단양이, 고양무를 왜에 파견하여 유학을 전파하였다.

세수 축소 등 농민 유망 방지를 위한 안정책을 실시하였다.

양나라와 수교하여, 무령왕릉(벽돌무덤)에 양직공도 백제사신도가 남았다.

 

<성왕(523~554)>

538, 사비성(남부여)으로 천도하였다. 국호를 남부여로 변경하였다.

왕실 사무를 맡는 내관(궁내부) 12부와 중앙 정무 기관인 외관(중앙 관청) 10부로 구성된 22부를 정비하였다.

수도를 5, 지방을 5방으로 정비하고, 그 아래 군을 설치하는 방군제를 실시하였다.

16관등제를 확립하였다. (cf. 6좌평 16관품의 관등제는 고이왕이다.)

겸익이 소승불교(인도, 율종불교)를 전래하였다.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하류를 확보하였으나, 진흥왕과의 관산성 전투(554)에서 전사하였다.

노리사치계를 일본에 파견하여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

 

<위덕왕(창왕, 554~598)>

성왕을 위하여 부여 능산리사지를 세웠는데, 여기서 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굴되었다.

부여 왕흥사지에서 사리기 명문이 발견되었다. (왕흥사 완공은 무왕 때지만, 목탑은 577년 위덕왕 때이다.)

 

 

<무왕(600~641)>

부여의 왕흥사가 완공되었다. (목탑은 위덕왕 때 세웠다.)

미륵사를 건립하고, 익산 천도설이 있었다.

일본에 승려 관륵을 파견하여 천문, 지리 등의 서적과 불교를 전파하였다.

 

<의자왕(641~660)>

642, 대야성(합천) 등 신라의 40여 성을 탈취하고, 한때 당항성까지 회복하였다.

사태지적비가 세워졌다.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 계백의 5천 결사대와 신라 김유신의 5만 병사의 전투가 있었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고, 660년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다.

 

+663, 백제 부흥 운동이 있었다.

임존성에서 흑치상지가 당에 투항하였다.

주류성에서 복신과 도침이 왕자 풍을 내세워 부흥운동을 이끌었고, 사비성을 공격하기도 하였으나, 내부 분열이 일어났고, 부여 풍은 고구려로 도망가였다.

백강구(백촌강) 전투에서 왜군이 나당 연합군에 패배하였다.

665, 신라의 문무왕과 백제 왕자 부여 융이 취리산에서 국경에 대한 동맹을 맺었다. (취리산 회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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