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한국사] 무장 독립 투쟁
[무장 독립 투쟁] 국내에서도 1919년 천마산대, 1920년 보합단, 1920년 구월산대 등이 만주의 독립군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무장 항일 투쟁을 이어 나갔다. 국외에서는 3.1 운동을 계기로 조직적인 무장 독립 전쟁의 필요성을 주장되었다. 북간도(북만주)에 대한 독립군(홍범도, 1919), 북로 군정서군(김좌진, 대한 정의단이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권고를 받고 북로 군정서로 개칭하였다.), 국민회군(안무, 1919), 군무도독부군(최진동, 1919)가 조직되었다. 서간도(남만주)에는 서로 군정서군(이상룡, 1919), 대한 독립단(박장호, 1919), 광복군 사령부(조병준, 1920), 광복군 총영 등이 조직되었다. 1920년 6월,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북간도 독립군 부대..
2020. 4. 15.
[공무원 한국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의열단
[대한민국 임시 정부] 3.1 운동 직후,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독립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각지에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연해주에는 대한 국민 의회(대통령 손병희, 국무총리 이승만), 상하이에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신한 청년당 중심, 국무총리 이승만), 국내에는 한성 정부(집정관 총재 이승만, 국무총리 총재 이동휘)가 있었다. 4월 신한 청년당을 중심으로 임시 의정원이 구성되었으며, 11일날 ‘대한민국임시헌장’을 반포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해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 임시의정원을 주체로 하여, 1919년 9월 11일, 본부를 상하이로 하고, 임시 의정원(입법부), 국무원(행정부), 법원(사법부)의 3권 분립 체제를 둔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2020.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