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한국사] 항일의병운동, 애국계몽운동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대한 반발로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유인석, 이소응 등의 유생들이 주도한 을미의병은,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해산 권고가 있자 자진 해산하였다. -동학 농민 운동의 잔여 세력이 참여한 농민 무장조직인 활빈당이 활동하였다. 방곡을 실시하여 빈민을 구제할 것, 시장에 외국 상인의 출입을 막을 것, 금광의 채굴을 엄금할 것, 철도 부설권을 허락하지 말 것 등을 주장하는 대한 사민 논설(활빈당 강령)을 발표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적으로 체결되자 을사의병이 봉기하였다. 양반 유생인 최익현, 민종식 외에도, 최초의 평민 의병장인 신돌석을 시작으로 다수의 평민 출신 의병장이 출현하였다. -1907년, 고종 강제 퇴위, 군대 해산과 시위대 대대장 박승환의 자결을 원인으로 정..
2020. 4. 9.
[공무원 한국사] 독립협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간도, 독도
서재필은 1895년 정동구락부를 통해 귀국하여 중추원 고문으로 임명되었으며, 1896년 정부지원금을 보태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1896년, 근대적 자주 독립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 독립협회가 창립되었다. 자주국권(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저지, 한러은행 폐쇄, 프랑스와 독일의 광산 채굴권 저지), 자유민권(참정권 운동), 자강개혁(의회 설립 운동)을 주장하였다. 1898년 3월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고, 1898년 10월 관민공동회를 개최하였다. 관민 공동회(백정 박성춘의 연설이 유명하다.)에서 헌의 6조를 결의하여 고종의 재가를 받았으며, 고종은 의회 설립 내용을 담은 중추원 관제를 반포하였다. 하지만 보수 세력이 독립협회를 모함하기 위해 익명서 사건을 조작하여 독립협회 해산령이 내려졌으며..
2020. 4. 8.
[공무원 한국사]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임오군란, 갑신정변
*개화파 -북학파에서 6,70 초반 통상개화론을 거쳐,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로 나뉘게 되었다. -1860년대 초기 개화파의 주요 인물은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이 있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그의 실학 사사을 계승하였다. 제너럴 셔먼호를 격퇴했었지만, 청나라에 다녀온 수 서양 문물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운요호 사건 이후 강화도 조약을 적극 찬성하였다. 오경석은 민족 대표 33인 오세창의 아버지이다. 역관으로, ‘해국도지’, ‘영환지략’ 등의 서적을 널리 소개하였다. 유홍기는 의관 출신으로, 갑신정변에 참여했으나 실패 후 행방불명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에 대한 외교 방법과 개화의 속도 등을 둘러싸고, 온건 개화파와 급진 개화파로 나뉘었다. 온건 개화파의 대표로는 김홍집..
2020. 4. 6.